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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연말부터 회사 내에서 들리던 안 좋은 소문들이 현실화되면서 그간 커리어 향상을 위해 달려왔던 나의 자신에게 허무함과 비참함을 느꼈다. '회사는 나를 책임져주지 않는 곳이다.' 아니 정확히는 우리를 책임져 주지 않았다. 회사 구성원 모두 느끼고 있지만 말하지 못하는 상황과 술 한잔 하면서 뒤에서 회사욕을 하며 풀어야 하는 이 현실에 대한 막막함... 회사생활을 시작한 이후로 이렇게 정시퇴근을 해본 적이 없었는데, 요즘은 매시간마다 손목시계를 쳐다보며 사간아 빨 리가라고 고사를 지내고 있다. 그만큼 일에 효율이 떨어지고 커리어도 무너져가는 거 가는 느낌이다. 이러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회사를 위해 일하고 싶지 않은 이 이중적인 속마음이 나를 더 화나게 만들었다.
여느 때처럼 퇴근을 한 뒤 운동을 하는데 트레드밀에 달려있는 TV에선 '6시 내 고향'같은 BJ가 고향을 찾아가 인터뷰도 하고 현지 음식도 맛보는 프로그램이 틀어져있었다. 운동을 하다 말고 나도 모르게 2~3분은 멍하니 그 화면만 본 거 같다. '떠나야겠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쉬고 와야겠다.
집에 들어오자마자 아내에게 이번주 주말에 강원도로 떠나자고 했다. 며칠 전부터 잘 먹지도 않는 회를 먹고 싶다고 하던 아내였기에 두말할 것도 없이 흔쾌히 수락해 주었다. 즉흥적이기도 했지만 바로 떠나는 것에 동의해준 아내에게 고마웠다. 가성비가 좋아 강원도에 들리 때마다 묵는 호텔이 있어 바로 호텔을 예약을 했다. 다행히 아이들과 같이 잘 수 있는 패밀리 침대도 남아 있었다. 숙소를 예약을 끝냈으니 여행 준비는 끝났다.
강원도는 연애 시절부터 일 년에 적어도 한 번은 꼭 가는 곳이다. 동해바다를 보기 위해 양양, 속초, 강릉을 가는 게 강원도를 가는 목적이다. 하지만 집 앞에서 먹을 수 있는 닭갈비가 먹고 싶어서 춘천을 간 적도 있고, 소고기가 먹고 싶어서 횡성을 가기도 한다. 지역 특색이 강한 음식도 많지만 평창이나 대관령에 눈썰매를 타거나 양 떼목장처럼 체험을 할 수 있는 곳이 많아 강원도를 좋아한다.
마음 같아선 차가 막히지 않는 토요일 새벽 5시에 출발하고 싶었다. 하지만 눈을 뜨니 8시가 넘었다... 주말이라 강원도로 향하는 차량이 많을 텐데 벌써부터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너무 서두르지 않기로 했다. 점심은 목적지에 도착해서 먹을 수만 있게 출발하자는 생각 준비를 시작했고 10시 20분 쯤되서야 출발을 할 수 있었다.
차가 막히지 않으면 약 2시간 30분 정도 걸리는 길이다. 이제는 내비게이션을 키지 않고도 갈 수 있을만큼 익숙하지만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교통상황에 맞게 경로를 변경하기 위해 네비게이션을 켜고 달렸다. 계기판이 알려주는 예측 킬로수로는 기름을 도착해서 넣기는 애매했했다. 그래도 정속 운전을 하면 연비가 올라가거니와 장거리 운전인 만큼 최대한 속대를 높이지 않고 달렸다.
약 3시간 20분 정도 지났을까? 휴게소 한번 들리지 않고 쉬지 않고 달린 덕분에 예상보다 일찍 도착했다. 속초 하면 유명한 음식 중에 하나가 '아바이 순대'다. 아바이순대의 시초가 되는 아바이마을은 속초시에 안에 설악대교와 금강대교사이에 위치한 작은 섬마을로 다리가 연결되어 있어 차나 도보로 갈 수 있다. 속초를 그렇게 자주 오고 가면서도 아바이마을에 들러본 적은 이번이었다. 몇 주전 부모님의 여행을 다녀오신 뒤 추천해 준 맛집이 있었서 우리도 들려보았고 애들도 순대굿에 밥을 말아 주면 한 끼는 금방 해결될 거 같았다. 가는 길에 부모님에게 전화를 걸어 식당위치를 대략적으로 파악한 뒤 인터넷에 검색했는데 그 인방에서는 제일 유명한 집이었다. 주차를 하고 있는 사이 아내가 먼저 내려 번호표를 뽑았는데 앞에 대기줄이 15팀이나 된다고 전화가 왔다. 식당 앞 공용 주차장에 자리가 나서 주차를 한 뒤 아이들을 차에서 내리고 바로 앞바다 방파제를 산책했다. 밥 먹기 전부터 애들이 해변가에서 뛰어놀면 그 모레를 어떻게 감당하겠는가... 다행히 애들도 그걸 아는지, 아니면 방파제를 뛰어노는 것만으로도 신이 나는지 해변가로 가지는 않았다. 아직은 제법 쌀쌀한 바람이 불었지만 방파제에 한 자리를 잡고 낚시를 즐기는 아저씨가 대여섯 명 계셨다. 신기하게도 낚시통에는 광어가 낚였있었다! 방파제에서 광어가 낚이다니... 저 가족은 오늘 3만 원은 굳었을 것이다.


방파제 끝까지 가자 차가운 바닷바람이 더 많이 불어 더 이상 놀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아내도 식당 앞에서 기다리고 있기에 서둘러 아이들의 손을 잡고 식당으로 향했다. 아직도 8팀은 더 남아있다고 했다. 아들이 화장실을 가고 싶다고 해서 내부도 살필 겸 기다리는 사람들의 눈총을 뒤로하고 식당으로 들어갔다. 길게 쭉 뻗은 식당내부를 눈으로 살피니 대부분 식사를 마치고 일어나는 중이었고 곧 우리 차례가 돌아올 생각에... 배가 고파졌다. 벌써 오후 1시 30분이 넘는 시간이었는데 다른 사람들은 점심을 아직도 안 먹고 뭐 하는 거람...
차례가 되어 식당에 들어가서 아바이순대국밥 1개와 함흥냉면 1개 그리고 오징어순대 소자리 1개를 시켰다. 아내는 모둠순대가 먹고 싶다고 했지만 다른 테이블의 나온 양을 보니 이렇게만 시켜도 충분할 거 같다고 말하며 오징어순대만 시켜주었다. 미안하긴 했지만 아마 다 먹을 때쯤은 배부르다는 소리 나오는 타이밍을 예상하면 이렇게 시키는 게 맞을 것이다. 테이블 회전이 빠른 건지 넓은 주방에서 여러 명이 일을 해서 그런 건지 생각보다 음식이 빠르게 나왔다. 오징어순대를 가위로 잘게 잘라 아이들 먼저 나눠 주었다. 뜨거워서 그랬는지 생각보다 잘 먹지는 않았다. 그 사이 나온 순대국밥에 밥을 말아 또 아이들 먼저 나눠주었는데 요 녀석들 순대국밥은 뜨거워도 잘 먹는다. 함흥냉면에 얹어진 명태회가 쫄깃해 보이는 게 군침을 돌게 했다. 가위로 한번 자르고 휘휘 저어 간을 한번 본 뒤 상콤한 감이 있어 식초는 더 뿌리지 않고 겨자만 살짝 뿌려주었다. 오징어순대를 냉면 위에 얹히고, 그 위에 명태회를 올려 한 젓갈을 입안에 넣었다. 하... 맛있다. 3시간이 넘는 운전을 하고 30분이 넘는 기다림이었지만 만족스러웠다. 역시 이 맛에 여행을 오는구나. (계속)
 
여행 기간 : 2023년 2월 18일 ~ 19일
여행 장소 : 강원도 양양시와 속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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